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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마츠 플릇 위탁

현재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플릇은 약 30만대정도로 보고 있으며 그중 대다수의 플릇(대략 20만저)은 일본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국내에서 판매디는 플릇은 대략 3만대 이상으로 플릇 동호인의 숫자는 그보다 훨씬많을것으훨 예측한 것은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일본의 플릇 시장(플릇 제작댓수 및 동호인수)가 세계에서 주목을 끌고 있는 이유중에 평생을 플릇제작에 헌신한

플릇 대가로부터 시작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라마츠 플릇으로 알고 있는 플릇의 제작자는 1898년에 태어는 마라마츠 고이찌로 라는 사람으로 죽는순간까지

플릇만드는 일에 종사했습니다.

무라마츠는 군악대 출신으로 처음에는 코르넷을 연주하면서부터 입니다.

[호른의 일종인 코르넷]

군악대시절 악기를 전무으로 수리하는 사람이 없어 무라마츠가 악기수리를 전담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도중 무라마츠는 플릇에 관심을 기울이게 됬고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플릇을 만들어 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당시 일본에서 플릇을 연주하는 사람이 얼마나 없었는지는 플릇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무라마츠는

무성영화관에서 직접 악기를 연주해 생계를 꾸려나갔습니다.

이렇게 모은돈으로 플릇을 만드는 장비들을 구입하고 제작하면서 드디어 일본최초인 무라마츠플릇이 1924년에 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무라마츠가 만든 플릇을 바로 상품화 하기 까지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플릇연주가인 요시다 가부가는 사람이 자신의 프랑스산 플릇의 수리를 의뢰한적이 있었는 수리 후 악기에서 전혀 소리가 나지 않자

플릇을 집어 던졌다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후 요시다는 목관(흑단으로 만든)프릇을 장만해서 사용했지만 음정이 낮아 다시 무라마츠에게

음정 조정을 의뢰했고 음정을 높이기 위해서는 헤드조인트를 조금 잘라내야 했는데 목관 악기 구조상 불가능했습니다.

이런이유로 무라마츠는 헤드조인트만 은으로 만들것을 요시다에게 제안했고 요시다는 무라마츠의 제안을 받아들여

은 헤드조인트로 주문하게 했습니다.

 

이후 무라마츠는 헤드조인트를 은판을 관처럼 말아서 헤드조인트를 만들어 요시다에게 납품합니다.

이것에 1932년 무라마츠 실버헤드조인트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입니다.

그후 다네플릇을 설럽한 다네꼬 쇼유지를 제자로 받아들입니다. 그 다네꼬는 다시 사꾸라이 고이치로(사꾸라이플릇사)에게

플릇제작 기술을 가르치게 됩니다.

이런 초기의 무라마츠사의 플릇은 우여곡절끝에 오늘날의 산쿄(당시 프리마악기)와 손잡은 1951년부터 점차 시장을 넓혀 갑니다.

이때 나온제품들은 프리마 무라마츠라는 상호로 나오게 됩니다.

또한 단독으로 무마마츠라는 자체상표도 제작하기도 합니다.

이당시에도 플릇은 직장인 한달월급정도 됬다고 하니 상당히 비싼 편 이였습니다.

은으로 플릇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56년이 지난후 부터이며 이렇게 열정적으로 계속 플릇을

만들던 무라마츠는 1960년 피콜로를 만들던 도중 공장에서 뇌출혈로 갑자기 사먕하게 됩니다.

그후 그후 금플릇 은 1964년에 처음 선보였고 그동안 같이 영업하던 프리마와(1965년) 헤어지고 모리다이라사와 협력하여 백금플릇(1973년) 제작 판매를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The Muramatsu Flute' 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무라마츠 플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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